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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적 일상을 추구하는 요원들을 위한
Plumbum의 전술 논평

세기말 상남자, 헬게 마이어에게 배우는 '무적(無敵)'의 전술

NETPX 2024-05-03 09:25:20 댓글 4 조회수549

 치고 받고 싸우지 않는 전술이 있다면 믿겠는가. 심지어는 전쟁통 한복판에서도 말이다.


 전술(戰術)이 곧 싸움의 재주와 요령, 술책을 뜻하는 말로 풀이됨을 생각하면 더욱 모순되는 명제다. 하지만 싸움은 갈등이나 난항을 풀어내는 여러 수단 중 하나로, 다른 수단에 비해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가지에 불과하다.


 싸움을 만들지 않고 적으로부터의 해를 피하며 요원들의 일을 돕거나 막지 않는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전술의 한 가지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최근 정세를 봐도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 등 이미 싸움은 많았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필자는 요원들이 이미 질리게 보았을 사람 잡는 전술이 아니면서도 웬만한 할리우드 액션영화로 만들어도 부족하지 않은 근사한 “비전투 전술”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때는 1992년, 발칸 반도.

 보스니아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끔찍한 전쟁으로 기록된 보스니아 전쟁의 참상.

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101,000명 이상이 사망하였으며, 이는 2차세계대전을 능가하는 통계다.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고, 같은 땅에 이웃해 살던 이들은 정치와 인종을 명목으로 척을 지게 되었다.


 어느 전쟁이라고 윤리적이고 깔끔하게 진행되었겠냐만, 전황은 웬만한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끔찍하게 흘러갔다.

 다른 민족 사람을 박멸할 벌레 군집으로 여기듯 자행되는 인종 청소와, 학교, 병원 등 구호시설을 개의치 않는 무차별 포격, 심지어는 보행자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조준사격하는 “저격수의 거리”까지, 과거 세계 대전조차 두려워할 지옥이 발칸 반도에  재림했다.



▲ “저격수의 골목”이라 불린 보행자 금지구역을 급히 뛰어 지나가는 시민

저격수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몸을 움츠리고 뛰어가거나,

평화유지군 소속 장갑차가 올 때를 기다려 장갑차 뒤에 숨어 지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시 살아남은 민간인들은 마치 도시의 그림자에서 틈새를 누비는 쥐와 같이 구차한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한다.


 대피소는 무차별 포격으로 대피해선 안될 곳이 되었으며, 다른 곳으로 향하고자 길에 나섬은 저격수에게 목숨을 바치는 자살행위다. 곳곳의 발 디딜 만한 곳은 적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지뢰가 민간인의 발목을 똑같이 노리고 있었다.

 한술 더 떠, 주요 길목에는 반군들에 의한 도시 봉쇄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어떤 물자나 사람도 드나들 수 없는 도시는 건물만 번듯할 뿐 속은 굶고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한 집안의 아버지로서, 집안에 먹을 것은 다 떨어진 지 오래다. 이대로 처자식이 굶주리는 비극을 막으려면 지난 달까지 웃으며 인사하던 아랫집 노부부의 집을 박차고 들어가 싸우고 그들의 찬장을 털어야만 했다 - 그렇게 이웃사촌은 공구와 부엌칼을 겨누며 대치하는 적이 되었다.


 이 생지옥을 멈추는 방법은 간단했다. 평화유지군이 생필품을 전해주면 될 일이 아닌가.


 하지만 앞서 도시의 주요 길목을 점거하고 봉쇄한 반군들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특히 평화유지군이 쓰던 물자수송용 트럭은 속도가 느리고 크기가 커서 멀리서도 포착하기 쉬웠고, 곧 표적이 되어 반군의 습격에 번번이 발이 묶였다.


 모두가 포기하려던 그때, 전직 덴마크군의 특수부대 예거 콥스(Jaeger Corps)의 장교 출신이자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헬게 마이어(Helge Meyer)라는 사내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했다.


 크고 느린 수송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작고 빠른 방식은 통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운송 수단의 예로 주독 미군이 주둔한 기지 구석의 1979년식 쉐보레 카마로 2세대를 지목하며, 불필요한 설비를 뜯어 생필품을 적재할 공간을 확보하여 작지만 고속화된 운송수단으로 반군의 저지선을 들이받아 침투할 것을 제안했다.


▲1979년식 쉐보레 카마로 2세대.

 5.7리터 V8 자연흡기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 후륜구동이 조합된 전통적인 미국 머슬카다.


 괴상한 만화 같은 기획이었지만, 솔직히 세계 최고의 미군이라고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더 나은 대안이 없어 계획은 승인되었고, 장비정비와 개조에 능한 미 공군 엔지니어의 기술지원으로 유례 없는 군용 머슬카 개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헬게 마이어가 지목한 카마로의 객실은 양쪽 옆면과 뒷면에 케블라 섬유 방탄판을 넣어 보강하였고, 뒷좌석 등 쓸 일 없는 인테리어는 모두 뜯어내어 경량화와 함께 생필품을 실어나를 적재중량, 적재공간을 극대화했다.


 차량의 외관은 스텔스기를 운용하는 미 공군에게 지원받은 검정색의 특수 스텔스 도료로 마감하였다. 또한 야간투시장비를 설치하여 운전자가 전조등을 켜지 않고도 모니터를 통해 어둠 속 길과 장애물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 작은 모니터와 위성 통신 설비까지 마련하여, 필요하다면 미군 첩보위성의 정보지원을 통해 위성사진을 받아 교차로 사이 반군의 유무를 미리 확인할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밤중의 야음을 틈탄 돌파 작전에 완벽한 편의사양이었다.


 앞 범퍼에는 지뢰와 인계철선으로 수놓은 노면을 지나는 차답게 캥거루 범퍼와 인계철선을 잘라내는 칼날, 바닥에 깔린 지뢰를 걷어내는 스커트가 견고하게 설치되었다.

 또한 타이어도 일반 타이어가 아닌, 총격이나 파편으로 터져도 한동안 주행 가능한 런 플랫 타이어로 교체하여 전천후 기동성을 챙겼다.


 이 모든 방법으로도 반군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다면 의지할 최후의 수단 또한 든든하게 마련했다. 바로 액화 아산화질소 과급기로, 차량에 능통한 요원들이라면 ‘니트로’ 혹은 ‘NOS’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그것이다. 덕분에 220마력의 정통 머슬카는 순간적으로 440마력까지 출력을 끌어올리며, 마음만 먹는다면 끈질기게 따라붙는 추격차량조차 후사경 속 작은 점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화룡점정으로, 이 괴물 같은 차의 정면 중앙에는 “귀여운 노란색 고무 오리 장난감”을 얹었다. 이로써 간절하던 구호품을 받아드는 민간인이든, 앞을 가로막는 반군이든 마주한 사람은 그 모습을 잊지 못할 세기말 분노의 폭주 머신이 태어났다.



▲ 검은 유령처럼 어둠을 내달리는 모습에 미군은 “고스트 카마로”라는 애칭을 붙였다.

V8, 방탄, 저시인성, 무광 올블랙, 스텔스, 야시장비, 첩보위성, 철제 범퍼, 칼날, 런플랫 타이어, 니트로, 러버덕(?).

위에 나열한 것들 중 하나만 들어가도 일반적인 자동차가 아니건만, “고스트 카마로”는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역전의 기수, 헬게 마이어는 이 검은 유령을 몰고 봉쇄된 사라예보의 밤거리를 찢듯이 내달렸다. 그는 이 자살임무와도 같은 이 수송작전에 작은 권총조차 지니지 않고 나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지만, 엄연히 “평화유지”군으로 전장에 뛰어든 그의 다른 이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그의 마음을 절망으로부터 지켜줄 개인화기(?)는 오로지 담배와 성경책 한 권 뿐이었다. 작은 문제는 담배 한 모금으로, 큰 문제는 성경책으로 이겨낸다는 그의 철칙은 수많은 수송작전동안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반군의 방어전선을 뚫고 원조가 필요한 민가 근처에 도착한 그는 먼저 차량을 큰 천으로 덮어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했다. 고스트 카마로는 반군에게 ‘방어선을 헤집고 다니는 적 전술차량’이자, 헬게 마이어 본인에게는 ‘봉쇄된 도시로부터 돌아올 유일한 교통수단’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모양부터 살벌한 차가 아니던가. 가능하면 누구도 그의 차를 알아보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


 다음으로 그는 민간인들을 만날 때만큼은 군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는 센스를 발휘했다.

 사복은 전투복과 비교하면 체온 보존이나 방수, 위장성능 면에서 부족한 옷일지 몰라도 대민지원 작전의 맥락에서는 훌륭한 ‘인문학적 위장복’이었다.


 약탈과 강도에 신경이 곤두선 시민들은 사복 차림으로 다가오는 헬게 마이어를 ‘자신들을 해치려 할지도 모르는 전투원’이 아닌 ‘생필품을 나누어주러 온 자원봉사자 아저씨’로서 환대했다.



▲ 신기해하는 보스니아의 아이들에게 고스트 카마로를 구경시켜주는 헬게 마이어(우)

이외에도 그는 가정의 저녁 식탁에 초대받거나 아이들의 침대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 현지인들에게 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 고스트 카마로를 운전 중인 헬게 마이어 (* 동일인물)

어둠 속을 내달리는 둘의 짝패는 말 그대로 유령과 같았다. 쏘아도 멈출 수 없었고, 쫓아도 잡을 수 없었다.


 곧 사라예보의 봉쇄된 도시 속에는 평상복 차림의 친근한 사내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 집집마다 살림을 보태며 돌아다닌다는 소문과, 밤중에 총도 폭탄도 안 통하는 네 발 달린 짐승이 어둠을 헤치고 돌아다닌다는 괴담이 동시에 퍼지게 되었다. 머지않아 그에게는 “신의 람보(Gottes Rambo)”라는 애칭이 붙었다.


 이후로도 헬게 마이어는 무려 100회가 넘는 구호품 수송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자동차와, 초월적인 운전 실력, 전직 특수부대원으로 갈고닦은 지리감각, 유혈사태 없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구하겠다는 숭고한 의지가 얽힌 그의 행보는 “데스몬드 도스” 못지않은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 보스니아 전쟁 종식 후, 독일에서 평화로운 삶을 사는 헬게 마이어와 고스트 카마로.

전후 고스트 카마로는 스텔스 도료와 야시장비, 통신장비 등 군용품을 탈거한 후 헬게 마이어에게 인도되었다.


 총 한 발 쏘지 않고도 숱한 위기를 이겨내며 뜻을 이루고 많은 삶을 구원할 수 있음을 증명한 헬게 마이어는 일상 속에도 유용하게 보고 익히며 행할 전술을 찾는 필자에게 많은 전율을 주었다.


 물론 그의 멋진 애마 “고스트 카마로” 또한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헬게 마이어 또한 차를 세우고 내리면 그럴싸한 총 한 자루 없는 단신의 사내에 불과했다. 약탈의 기회를 엿보거나, 약탈자들에 질려 살림살이를 무기 삼아 맞서려는 이들이 여럿 달려든다면 그 또한 곱게 돌아오기 힘들었으리라.


 첫 대면만큼 사소한 모습이나 행동거지가 오해를 사기 좋은 순간은 없다. 전쟁 속 예민한 민간인들에게 처음으로 다다른 그는 위압적인 차를 숨기고 전장의 군인이라는 험상궂은 겉모습을 벗은 다음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한 사복 차림으로 다가가 모두의 친구로 인정받았다. 화려한 무장을 주렁주렁 걸치기는커녕 타인의 상황과 행색에 맞춘 접근이 곧 맞설 적이 없는 “무적(無敵)”을 만든 셈이다.

 

비록 전투는 아니지만 전술적 사고는 필요한 현대의 우리네 삶에도 어느 정도 보고 배울 만한 게 아닐까 싶다. 공교롭게도 지금 우리 사회도 세기말의 보스니아처럼 내 몫을 챙기느라 다른 이들과 경쟁하며 서로의 신경과민이 뻗친 게 닮은 듯하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감이나 지위, 성취를 굽힘 없이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의 입장에 맞추어 동질감을 주고 위화감을 줄이는 접근도 좋지 않을까.



댓글 4

Plumbum

2024-05-17 12:22:12

 

안녕하십니까, 가끔눈팅이요 요원님. Plumbum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시어 감사드리며, 저 또한 요원님의 신중한 고찰이 담긴 글을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넷피엑스의 직원이자 본 게시판의 에디터, 칼럼니스트로서 댓글을 올립니다.

아마 사회적 갈등이 완벽히 없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살다 보면 누군가가 대단한 이유 없이 마음에 들어보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중대한 사유 없이 멀리하고픈 마음도 들게 마련입니다.
개개인의 심리만 해도 그러하니, 사람들 사이에서 특정 타인이나 타 집단이 밉거나 싫어보이는 현상 또한 인류사에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예상됩니다.

물론 이를 미국 남북전쟁 같은 내전으로 해결하는 법도 해결책 중 하나이며, 분명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수 차례 쓰여온 기록이 있긴 합니다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선의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과거에 곳곳을 다니며 뵈었던 몇몇 노인 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산간시방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 댁에는 다양한 농기구와 공구들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만, 특이하게도 도끼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할머니의 자녀분들로부터 당신께서는 한국전쟁 시절에 만삭의 여성을 동굴 속에서 끌어내어 도끼로 처형하는 모습을 보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어느 농부 아저씨는 개울가를 가리키며 어릴 적 놀다가 불발탄 때문에 동네 형들이 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처럼 내전은 역사 속에서 갈등 해결 방식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벌어지지만
실제로는 사회 구성원에게 회복하기 힘든 물적, 심적 피해를 주는 해결책으로 보입니다.

전술가라면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되어있되, 최선의 계획이 구현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넷피엑스가 각종 전투 장비까지 구비함은 최악에 대비하기 위함이지, 최악의 방식을 선호하거나 권장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

덧붙여, 좋은 대인관계마저도 전술의 맥락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정보기관에서 골프나 테니스, 간단한 도박, 술자리 및 테이블 매너 등 사교성 잡기를 교육시키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폭력으로 일회성의 협조를 강압하는 것보다 친화적인 포섭으로 장기적 교류를 꾀하는 방식이 노력 대비 성과가 좋은 전술이라는 반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 글이 요원님의 폭넓은 고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야옹이최고

2024-05-03 11:19:00

 

넷피엑스에서 매일보던 제품들이 조금 새롭게 보이네요~~ 택티컬적인 시각으로 쇼핑하면서 보는 칼럼~ 재밌습니다!
저는 단순히 쇼핑만 하러 들렀다가 배워가는 게 많네요. 종종와서 읽고가겠습니다~ 좋네요~

Plumbum

2024-05-03 11:17:10

 

안녕하십니까, 넷피엑스 요원 여러분.
택티컬 에디터 Plumbum이 근 한달여만에 다시 인사드립니다.

이번에는 독특한 전술적 사례를 찾아 한번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과 함께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 즐겁게 글을 써 준비해 보았습니다.

뭔가 "택티컬 동화책(?)" 같은 사건과 인물의 행보에 저도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만, 여러 사진과 면담 영상을 보니 실존 인물, 실제 사건이더군요.
저만의 상상입니다만, 분명 미 공군 엔지니어들도 차를 밤새 접붙이고 잘 작동하는지 시험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즐기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듭니다.

세기말 의협의 로망을 현실화한 모습과, 의외로 복잡한 군사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상식선에서도 이해되는 전술적 행보가
앞으로도 택티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여러분들께도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적은 하나라도 적은 편이, 친구는 하나라도 많은 편이 좋으니까요.

요원분들 모두 즐거운 연휴와 어린이날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음 회차에서 뵙겠습니다.

가끔눈팅이요

2024-05-03 09:56:17

 

마지막 부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원래 인간은 서로를 증오하고 공격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 집단인데,
그 공격성을 예의라는 포장으로 감추고
법의 잣대로 처벌하면서 사회를 형성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우리나라에 갈등이 없고 잘 통합됐을 텐데, 그게 비정상이지
지금처럼 나토나 러시아처럼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게 정상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개인성을 존중하고 개인 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이 단군의 후손이라고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의 키와 얼굴이 서로 다른 것처럼,
우리 모두는 한 민족이 아닌
다른 인종의 후손이라고 믿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한국인은 본래 선하거나 하나의 의견으로 통합될 수 있다는 믿음은
분명히 독재국가에서만 가능한 망상입니다.

사회적 갈등의 축적은 내전으로만 해결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도 언젠가는 외세의 침략이 아닌
미국 남북전쟁과 같은 내전으로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NetPX 물건을 많이 구매하고, 택티컬 생활을 일상에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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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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