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밀리터리ㆍ아웃도어 세상
전술적 일상을 추구하는 요원들을 위한
Plumbum의 전술 논평
NETPX | 2024-03-18 17:33:00 | 댓글 13 | 조회수2,585
기온의 상승으로 피어오르려는 꽃눈에 개강, 개학까지 겹쳐 자연도 사람도 하나같이 활기를 더해가는 나날이 되었다.
이 시기를 다들 기다려왔던 건지 거리를 지나는 이들에게도 화려한 옷차림과 형형색색의 가방 등이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길을 지나던 필자의 눈에 재미있는 특징이 눈에 밟혔다. 몇몇 행인의 가방에는 마치 사다리 모양을 닮은 우툴두툴한 웨빙이 일정한 간격으로 둘러져 있다는 점이었다.
넷피엑스의 직원으로서 그 무늬가 무엇인지 알아챔은 어렵지 않았다. 바로 “MOLLE”라고 불리는, 현대 전술 파우치의 범용 규격이 자아낸 독특한 무늬였다.
1996년, 미 육군 전투역량개발사령부(U.S. Army Combat Capabilities Development Command)는 세계 어디에서든 벌어질 전쟁에 임할 준비를 위해, 그리고 점차 변모하는 전투의 양상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ALICE 군장체계를 대체하는 새로운 군장체계를 연구,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7년, 요원들에게 익숙한 이름인 MOLLE(MOdular Light Load-bearing Equipment)가 탄생하였다.
아쉽게도 MOLLE 군장체계는 등장 당시 세상의 이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명검은 전장에서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니, 2000년대의 초를 들썩인 미-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MOLLE는 피와 땀, 모래폭풍, 총알과 IED 파편을 뒤집어쓰며 거칠고도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물론 어느 군용장비라고 그러한 고난을 넘지 않았을까. 아버지 격인 ALICE 또한 냉전시대부터 탈냉전 세기말에 걸쳐 풍파를 겪었고, 할아버지 격인 MLCE도 길고 끔찍한 베트남전에서 산전수전을 버텼었다.
하지만 지금의 MOLLE는 이전의 군장체계와 비교할 수 없는 광범위한 파급력이 심상치 않다.
미군과 세계의 여러 군사, 법집행 기관은 물론이며, 필자가 길 지나다 봤던 민간의 아웃도어용품이나 워크웨어, 심지어는 전투와는 거리가 먼 밀리터리룩 패션에도 그 모습을 심심찮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술용품을 매일 접하며 모두의 일상에 편리한 사용을 연구하는 필자로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MOLLE는 앞서 말한 대로 미군이 다양한 전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든 호환성 높은 군장 체계다. 그 “호환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임무나 지형, 소지하는 장비나 소모품 등 다양한 맥락에 맞게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어야 할 것이었다.
자유로운 변형을 위해서는, 모순적이게도 정형화된 통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플라스틱 블록 완구의 대명사, 레고(Lego)를 떠올려보자.
특수한 목적의 부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플라스틱 블록들은 같은 규격의 돌기로 서로와 이어지도록 만들어져, 블록이 연결되는 각도와 위치를 바꾸어 자동차의 축소 모형부터 스타워즈의 거대한 우주선까지 다양한 모양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저 장난감에 지나지 않아 우습게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규격화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1974년에 수학자들은 2X4칸 규격의 동일한 레고 블럭 6개를 조립하는 경우의 수는 102,981,500가지라고 규명한 바가 있었다. 적지 않은 수다.
▲ 2X4칸 규격의 레고 조각 1~6개를 끼워 붙일 수 있는 경우의 수.
규격화는 생각보다 천문학적인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는 당시 계산의 한계로 6개의 레고 블록을 쌓는 규칙을 제한하며 산출된 결과였다. 현대의 발전된 연산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연구한 결과, 2X4칸 규격의 레고 블럭 6개를 조합하는 모든 방법은 총 915,103,765가지로 밝혀졌다. 어느 쪽이든 감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경우의 수가 많다.
MOLLE도 이러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전투원 모두에게 베풀어 대응의 폭을 넓히고자 군장류의 표면에 크고 작은 파우치의 자유로운 배열을 위한 통일된 규격을 만들었다. 바로 PALS(Pouch Attachment Ladder System)라는, 말 그대로 ‘파우치 결속을 위한 사다리 모양 체계’가 그것이다.
PALS는 본래 MOLLE라는 군장체계 중 파우치의 자유로운 부착을 위한 인터페이스로서, 개발 초기에는 MOLLE 군장의 백팩과 조끼의 표면에만 적용되던 소소한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MOLLE의 특장점이었던 군장 배치의 유연성이 대부분 PALS에 기인한 데다가, 오와 열을 맞춘 단정함과 1인치에 달하는 질긴 웨빙의 미스매치가 특징적인 외관을 자아내어 MOLLE 하면 수평의 웨빙이 일정한 간격으로 표면을 덮은 PALS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요원들이라면 아래의 사진을 보자마자 PALS가 무엇인지 금방 알아챌 것이다.
PALS는 25mm 폭의 나일론 웨빙이 38mm 간격으로 일정하게 박음질되어 고정된 수평의 행과, 25mm폭의 빈 행이 교차하며 반복하는 표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 파이커택티컬 메쉬 PALS 베스트 (코요테)의 PALS가 적용된 표면.
(상품 링크 : /app/product/detail/126391)
파우치를 원하는 위치에 고정하기 위해서는 파우치에 함께 딸린 세로 방향의 나일론 스트랩으로 양쪽 접촉면의 38mm 간격 박음질 사이를 번갈아 꿰어 끝자락을 스냅 단추로 고정시키면 되었고, 이 구조는 생각보다 강한 마찰력과 힘의 분산 덕에 일부러 단추를 풀어 헤치지 않는 이상 견고하게 자리잡았다.
▲ MOLLE 호환 파우치의 스트랩과 PALS 규격의 결합 예시.
이전에 쓰이던 ALICE나 MLCE 등 파우치의 부착을 위해 철제 클립을 쓰던 시절에 비하면 별도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아 간편했으며, 착용 후 엎드리거나 기댈 때 배나 등허리를 날카롭게 짓누르던 클립의 이물감도 없어 착용감 또한 나았다.
게다가 파우치를 고정하는 나일론 웨빙은 물이나 땀, 습기에 녹슬거나, 클립에 이물질이 배겨 못 쓰게 되는 불상사 또한 없었으니 보급과 정비 면에서도 MOLLE의 실전 배치를 크게 반겼으리라.
이처럼 이상적인 군장체계로 호평받은 MOLLE 군장체계는 황야나 산지, 시가지에서 밤낮 없이 극단적인 상황을 겪는 군사 분야는 물론이며, 전쟁이 아니어도 어떤 상황을 마주할지 모르는 경찰이나 소방, 냉혹한 자연에서 생존과 생활을 전제하는 아웃도어 업계까지 빠르게 확산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완벽이 공인된 셈이지만, 전술가들의 많은 장비를 가볍고 작게 지니고픈 모순된 욕심은 고대 로마군 시절부터 모든 군장의 요구사항이었다. MOLLE도 엄연한 군장으로서 더욱 경랑화할 것을 요구받게 되니, 전술용품의 제조사들은 이전의 MOLLE를 향상시킨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바로 레이저 컷 MOLLE다.
기존의 웨빙을 쓰는 MOLLE는 25mm 폭의 나일론 웨빙을 군장의 원단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음질하여 PALS 규격을 구현했다. 즉,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기존 군장에 나일론 웨빙과 박음질하는 실오라기의 무게와 굵기가 더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레이저 컷 MOLLE는 PALS가 위치할 원단의 표면에 정밀한 레이저로 구멍을 뚫고 테두리를 녹여 올이 해지지 않도록 굳혔다. 덕분에 여전히 PALS와 같은 기능을 간직하며 웨빙과 박음질이 생략되어 조금이라도 가볍고 작은 군장을 만들 수 있었다. 겉면을 덮는 군더더기가 없으니, 원단의 위장무늬를 가리지 않고 요철 없이 ‘Slick(말끔)’한 외관이 되었다는 점도 소소한 장점이었다.
하지만 원단을 곧 PALS의 웨빙 삼아 하중을 의지한다는 점과, PALS 규격의 홈이 원단을 ‘절취선’처럼 뚫어둔 탓에 잘못된 방향으로 힘을 받으면 군장째 찢어질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로 인해 하중 부담이 적은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 5.11 택티컬 TACTEC 플레이트 캐리어 (스톰)의 모습.
(상품 링크 : /app/product/detail/115408/0)
독특하게도 레이저컷 MOLLE와 웨빙 MOLLE를 각각 흉부와 복부에 섞어 쓰고 있다.
두 가지 MOLLE의 외형과 차이, 특성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로 위의 5.11 택티컬 TACTEC 플레이트 캐리어 (스톰)의 모습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듯하다.
전투원의 필수품인 탄알집과 탄약, 무전기 등은 묵직한 중량을 동반한다. 그리고 군장에서 무거운 소지품은 사용자의 무게중심에 가깝게 위치하여야 움직일 때 휘둘리는 무게를 최소화하여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
이 점을 이해한 5.11 택티컬은 플레이트 캐리어의 복부에 강한 부하도 견딜 수 있는 웨빙 MOLLE를 마련하여, 육중한 파우치를 사용자의 무게중심(단전)에 가까운 위치에 견고히 고정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에 비해 플레이트 캐리어의 흉부에는 레이저 컷 MOLLE가 마련되어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일반적으로 가슴 앞에 신분증이나 ID 패치, 기타 소속을 대변할 부착물 등 가벼운 품목이 위치함을 반영한 교묘한 설계다.
이와 같이 MOLLE는 개량을 통해 사용자의 부담을 줄이면서 응용방안을 키우고자 혁신적인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아직은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대립하더라도 이들을 혼용함으로서 장점을 벼리며 단점을 희석하는 5.11 택티컬의 참신한 시도는 특기할 만하다.
이하에는 위의 사례 외에도 응용할 방안을 고민할 가치가 있는 MOLLE 적용 상품들을 모아보았다. 요원들도 한번쯤 살펴보며 전투 외에도 작업이나 등산, 캠핑 등 각자가 추구하는 일상에 맞는 자신만의 로드아웃(Loadout)을 구상해 봄도 좋을 듯하다.
지금까지 MOLLE의 기원, 특징, 기능과 특장점, 변천사와 변형, 응용 사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MOLLE는 현대의 유연성 높은 장비 휴대 및 운반 체계로, PALS라는 파우치 부착 규격을 통하여 호환성과 편의를 선사하여 본래의 사용처인 군사 분야를 초월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기능을 향상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어떤 제품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주말, 필자는 지하철역 인근 사거리를 지나던 도중 MOLLE 특유의 사다리 무늬가 돋보이는 백팩을 메고 스쿠터를 타던 행인을 돌아보았다. 오늘 출근길 아침에는 차창 너머로 사막색 웨빙이 눈에 띄는 슬링백을 둘러맨 대학생을 지나쳤다.
주변에 점점 MOLLE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 삶에 멋과 실용을 가미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듯하여, 필자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풍경이었다.
앞으로는 MOLLE가 단정한 격자무늬와 거친 웨빙의 미스매치가 눈을 사로잡는 패션 아이템을 넘어, 제대로 쓸 줄 안다면 사용자의 “입는 진열장” 못지않게 다양한 편의를 휴대하는 플랫폼으로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댓글 13
네트포트익스
|2024-04-02 01:31:12
SPARTAN
|2024-04-01 22:30:29
준벅
|2024-04-01 13:34:48
넥스트BK
|2024-03-28 10:38:29
관문동어촌계
|2024-03-28 00:24:11
넷px
|2024-03-27 10:13:49
독도는우리땅
|2024-03-26 21:34:32
그돈씨
|2024-03-26 20:31:51
하와이
|2024-03-26 20:11:53
GUN
|2024-03-26 19:49:23
넷피돌이
|2024-03-26 14:52:43
px
|2024-03-20 13:37:47
Plumbum
|2024-03-19 09:12:13
140-012-398070 (신한은행)
예금주 : (주)포스트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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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