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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mbum의 전술 논평

[2024 설날 사설] '새해 복보다, 무운을 빕니다.'

NETPX 2024-02-13 18:08:10 댓글 4 조회수787

 어김없이 2024년의 설날이 왔다.


 음력으로도 2023년은 닳아 저물었고, 명실상부한 2024년이자 갑진년의 첫 근무일에 즈음하여 반가운 인사를 전함이 옳겠지만, 괜스레 요원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들쑤실 소식을 알린다.


 요즘 기술집약적 산업에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

 모든 요원들은 기술집약적 산업에서 비롯된 소비재의 선택과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

 (* 사안에 따라서는 생사를 보장할 수 없다.)


 물론 기술의 효용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의 필자는 처음 듣는 단어를 학교의 선생님에게 묻거나, 인근의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책장을 뒤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에 몇 자 적기만 하면 궁금해하던 것을 활자와 사진, 동영상 등으로 현란하게 배울 수 있으니, 호화로운 삶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현대의 문명에 감사하며 이로움을 즐겨온 필자이지만, 여기에서 감히 의문을 제기하겠다.


 만약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유익하고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요원들도, 필자도 자본주의의 세상에 살고 있다.

 출근길에 타고 온 차, 책상 위 커피 한 잔, 언제나 입는 정장, 지금 손으로 누르는 자판, 보고 있는 모니터, 휘갈긴 메모지, 널부러진 연필까지.

쓰는 물건 중 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다. 


 자본주의에서는 재화나 서비스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리고 다양한 기술들로 말미암은 새로운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효익을 주거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혜택을 주는 상품은 소비자들의 간택을 받고 매출을 드높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기술집약적 재화와 서비스는 목적을 잃은 채, 그저 경쟁자보다 나은 가성비의 상품을 만들어 대중을 자신의 고객으로 사로잡기 위한 무제한 경주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자신들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가 사용자의 곁을 보좌하기에 충분한 “안정성”과 “신뢰도”를 갖추었는지 검증하는 과정에서 조급해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만 같다.


 약 10년 전쯤, 삼성의 갤럭시 노트 7은 여러가지 의미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 한창 관련 사건이 국제적으로 이슈화되던 시절 유행하던 밈(Meme).


 배터리의 눌린 음극판이 양극판에 맞닿아 합선이 일어난 탓이다. 이미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게 된 소비자들은 주머니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IED(급조폭발물)를 멀리 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게 되었다.


 2018월의 여름을 앞둔 시절이었다. 수천만 원을 들이며, 필요하다면 미래까지 캐피탈에 저당 잡혀가면서 산 BMW 사의 차량들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화재가 연달아 벌어졌다.

 그 까닭을 알고 보니 엔진 배기로부터 냉각을 거치지 않고 연결된 배기가스저감장치에 열이 쌓인 탓이란다. 독일 자동차 명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엔진 설계의 착오였다.


 2020년대의 초입, 판데믹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대학교의 비대면강의 서비스는 구설수에 올랐다. 강의의 품질이 사이버대학교의 그것에 비하여 저급하다는 이유였다.

 평생의 노력을 바쳐 남보다 나은 학업성적을 일구어 대학문을 뚫은 학생들은 “사이버대학교보다 비싼 등록금을 바치고도 그보다 못한 교육 서비스”에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학업에 매진했는지 회한이 들었으리라.


 2022년 12월, 어떤 제어도 듣지 않고 엔진과 트랜스미션의 한계를 시험하듯 가속하는 차를 기억하는가.

 차량의 결함 의심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거쳤지만, 급발진의 원인은 차량 제조사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알 수 없었다. 졸지에 사랑스러운 손자 “도현이”를 죽인 모양새가 된 할머니는 훗날 아들과 며느리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빌었다고 전해진다.


 작년 봄, 구조공학의 정수 중 하나인 건축물의 기둥에는 철근이 빠졌다.

 무량판 공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감리들은 왜 철근이 남는지, 어디에서 빠진 철근인지 시공과정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지어진 집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사들인 이들은 집을 팔 수도, 대형폐기물로 딱지 붙여서 내다 버릴 수도, 안에 살림을 차리고 살 수도 없는 어중간한 입장이 되었다.


 지난 11월 초, 농산물 상자를 자동으로 집어 분류하여 옮기는 자동화 기계를 시운전하던 직원은 상자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 로봇 팔에 짓눌려 죽었다.

 그야말로 자동화되고 혁신적인 유형의 재해였다. 어느 집안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사랑받는 자식이었을 40대는 그렇게 고작 알고리즘을 성실히 이행한 기계에게 파프리카 궤짝 취급 받으며 허무하게 갔다.


 그리고 우리가 설날을 맞이하여 연휴를 즐기는 동안,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는 특별한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바로 거리에서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돌연 지나가던 무인 택시를 부수고 불태운 것이다.


 

▲ 현지 시간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음력설을 맞아 진행된 불꽃놀이 행사 도중 벌어진 무인 택시 방화 사건.

미숙한 신기술의 성급한 상업화가 개인의 재난을 넘어, 사회 전반의 불안과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다.


 주행 중 네트워크와의 연결이 불안정하다는 탓으로 길 한가운데에 멈추어 교통체증을 만듦은 애교요, 구급차를 정체시켜 응급환자의 생사가 달린 귀중한 시간을 날리거나, 횡단보도를 걷던 행인을 덮쳐 인명을 해치는 등 자율주행 택시의 봐줄 수 없는 만행에 인내심이 다한 민중이 지른 업화(業火)는 새해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나온 상품과 서비스는 안정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어설픈 결과물을 성급히 시장에 내며, 오류나 결함으로 인한 피해를 고객이나 사용자 등 불특정 다수에게 전가하는 패턴을 다년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마치 신발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헐레벌떡 뛰는 축구선수 같아, 지켜보는 입장에서 경쟁자와의 몸싸움을 이겨내기는커녕 제풀에 넘어지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필자는 앞으로 이러한 악순환이 가속도가 붙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빠르고 신속하게,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유형과 상식을 넘는 규모로 요원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위협하리라 예측한다.


 조만간 도심항공모빌리티(UAM)가 상용화되어 날아다니는 택시가 생겨나고, 전기차, 수소차 등이 보급화되며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리라.

 그렇다면 언젠가 GPS가 고장난 무인 비행 택시가 요원들의 머리 위로 날벼락처럼 내리닥치거나, 출퇴근길에 올라탄 만원 버스가 단 수 초만에 용광로처럼 달아오르는 어처구니없는 비극도 벌어지지 않을까.


 전례 없던 시도를 낙관적인 투로 “혁신”이라 칭송하고, 이전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소비재를 넙죽 받아들인 귀순자에게는 “얼리어답터”라는 영웅칭호를 붙여 선전하는 오늘날, 필자는 전 요원들에게 어설픈 신상품, 신기술의 프로파간다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태세를 발령한다.


 막연히 좋은 것을 마다하라는 뜻이 아니다.

 진정한 전술가라면 최선을 위해 노력하되 최악에 대비되어야 하는 법.


 영업쟁이는 단점을 말하지 않는다. 신상품이 과연 그의 말만큼 좋은지는 요원들이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만, 효익과 비용만을 두고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 성능비)"를 따지는 소비자의 경제학에 기반한 가치판단 모델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신상품, 신기술을 접하면 원리나 사례를 탐구하고, 내재된 안정성과 위협을 충분히 저울질하여, 잠재된 위협이 크다고 판단되면 이를 요원들의 곁에서 멀리 둠을 추천한다.


 이제 2024년이다. 이 세상 누구도 2024년의 끝에 다다른 적이 없으니, 요원들이 직접 헤치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 모험에서 마주할 것들 중에는 멋지고 새로운 것도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안정화되지 못한 기술이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어 필자를 염려케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식상한 말보다, 요원들의 무운(武運)을 우선하여 빈다.




댓글 4

GUN

2024-02-26 16:05:50

 

합리적인 의심과 검증을 하면 살아가야하는 시대 같습니다.

가끔눈팅이요

2024-02-23 19:57:20

 

올해를 가장 잘 요약하는 단어는 "각자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입니다. 사람의 현재란 과거 행동의 총합이므로 미래 역시 현재에 의해 결정됩니다. 직업과 성격 역시 교육과 어린 시절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 이후의 국제 질서는 양극화에서 다변화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습니다. 많은 작전 장교들이 미래의 전장은 핵무기와 사이버 공격이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알보병의 돌격과 고지 점령이 여전히 승패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F-35 스텔스 전투기,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기상무기 HAARP, 인공지능 워게임과 같은 첨단 무기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중동 등 불량 국가의 재래식 전력을 제압하지 못하는 것은 나치의 비밀 병기가 기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합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각자도생을 위한 선택을 하려면 자신만의 철학과 통찰력을 키워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아침 지옥 같은 출근 전쟁을 치르며 치킨에 맥주를 마시고 하루를 마감하느라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고라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 불경화된 체제 속에서 아나운서, 논설위원, 듣보잡 전문가, 지도자들이 매스미디어에서 말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그들이 우리에게 그러한 선택을 제시하는 데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질문하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제 바쁜 업무에서 벗어나 잠시 월차를 내어 나만의 Zeitgeist(時代精神)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야옹이최고

2024-02-14 11:45:34

 

이 칼럼을 읽다보니 과거 여러 사건들이 함께 떠오르네요...
다들 지난 삶 살아내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다같이 평온한 삶을 살아갑시다. 새해복많이 받으시길.

Plumbum

2024-02-13 18:19:15

 

안녕하십니까, 요원 여러분.
세배 대신 글을 올리며 인사드리는 Plumbum입니다.

혹시 총기에 조예가 깊으신 요원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옛날에 WA2000이라는 저격소총이 있었습니다.

1972 뮌헨 올림픽 당시 검은 9월단이 벌인 테러사건과 후속대처의 실패로 인해
대테러용 정밀 저격소총의 소요가 제기되며 만들어진 독일의 고정밀 반자동 저격소총이지요.

WA2000에 적용된 기술은 높은 정밀도를 보장했지만, 높은 단가와 더불어 생소한 구조, 이질적인 작동방식으로 인해 대테러부대에 쓰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에 반해 기존부터 쓰던 G3 소총과 외형, 조작법이 대동소이한 PSG-1이 선정되어 대테러 저격 임무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전술적 태도라는 건 어쩌면 WA2000 대신 PSG-1을 택한 당시 대테러부대의 선택과 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제어할 능력이 없다면 애물단지 내지는 예측불허의 복병이 되지만, 익숙한 요령은 몸에 배어 사용자를 배신할 일이 적으니까요.

신기술, 신상품이 앞다투어 상업화되는 요즘, 한번쯤은 헤아려 볼 전술적 태도의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원분들 모두에게 새로운 것을 멋지게 거머쥐는 복 못지않게
이미 가진 소중한 것을 잃지 않는 무운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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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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